[인터뷰] 솔비, 붓을 들다

2016년 7월 7일 Sol Bi (권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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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순녀(뇌가 순수한 여자)’라고 비쳐지던 예능 프로그램 속 모습으로만 솔비를 판단하면 큰 오산이다. 그녀에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꾸준히 나눔 활동을 하는 의외의 면이 있다.

평소 작품 활동을 한다는 작업실에서 솔비(32)를 만났다. 원래 포토 스튜디오였던 이곳의 천장에는 사진 촬영할 때 쓰는 여러 개의 조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모델이 포즈를 취하던 공간에는 물감이 가득한 선반과 이젤이 놓여 있고, 연습 용도로 쓰이는 바닥은 형형색색의 물감들로 뒤덮여 있다. 한쪽에 마이크가 놓인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른다고 했다. 좀처럼 느낄 수 없던 낯선 분위기였다. 낯선 건 기자만이 아니었다. 그녀도 작업실에서 옷을 갖춰 입고 있는 걸 어색해했다. 아무래도 작업복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형광색 물감이 잔뜩 묻은 레깅스를 신고 앞치마를 둘렀다.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졌다.

그림 그린 지는 얼마나 됐어요? 5년 정도 됐어요. 집중적으로 한 지는 2, 3년 됐고요. 처음엔 치유의 목적으로 시작했어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심리치료사 선생님께서 권유해주셨거든요. 초반에는 미술 선생님께 회화 지도를 받았어요. 정식으로 차근차근 밟아온 건 아니지만 즐겁게 배웠죠.

작품의 표현 대상이나 방식이 굉장히 다양해요. 주로 어떤 대상을 그리나요? 점점 달라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마치 일기처럼 제 마음을 표현했어요. 그땐 직설적이었다면 지금은 좀 더 추상적이고 개념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요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음악을 만들어요. 최근에는 ‘공상’이라는 작업을 했어요.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시겠지만,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제가 즉흥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해요. 이렇게 음악과 미술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그림에 푹 빠진 것처럼 보여요. 그림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은밀한 친구 같아요.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는 언제나 합의가 필요하잖아요. 두 사람이 약속을 잡으려고만 해도 서로의 합의가 필요한데, 그림은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어요. 방송 할 때는 제가 한 말로 인해 오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아서 좋아요. 다 표현할 수 있잖아요. 사실 제가 말을 잘 못해요(웃음). 그런 저한테 딱 맞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요. 굳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두서없이 얘기하는데도 그림은 모든 걸 이해해주죠. 제가 남들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많아서 ‘4차원’이라고 불리는데, 미술을 할 땐 그런 부분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해요. 가장 우선은 ‘나’죠. 나를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계속 알려고 해요. 인문학적인 글을 읽거나 전시를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최근엔 마크 로스코(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의 전시를 봤어요. 굳이 형태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그림에 담긴 영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만으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제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요. 좋아하는 그림을 만나면 작가에 대해 찾아봐요. 그렇게 파고들면 미술사적으로 자연스럽게 지식이 쌓이더라고요.

이제 ‘솔비’를 검색하면 직업이 ‘가수, 화가’라고 나와요.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만 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 떳떳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니까 책임감을 가져야죠.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아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2의 활동, 나눔
그림으로 위로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연예인이 미술을 한다고 부끄러워하기보단 자신의 재능을 좋은 일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꾸준히 벽화 재능 기부를 했고, 개인전을 열어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했다. 결코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기부는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제가 힘들 때 그림을 만났잖아요. 관심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연히 그림을 그리게 됐는데, 가슴이 뻥 뚫렸던 그때의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마치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어요. 굉장히 힘든 시기에 그림이 제게 선물같이 다가온 거죠. 그래서 이걸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어요.

기부금은 어디에 쓰이고 있나요? 특정 단체를 통해 하기보다는 제가 직접 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고향인 군포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데 쓰기도 했고, 아프리카에 학교 짓는 데 보태기도 했죠. 사실 제가 이런 이야기하는 걸 좀 부끄러워해요. 2014년에는 재능 기부 대상과 사회공헌 대상을 받게 됐는데, 시상식에 갔다가 중간에 나왔어요. 혹시라도 내 마음이 변질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상장만 있고 기념사진은 없어요(웃음). 지금도 제 작업실에서 붓을 들고 사진 찍는 게 어색해요. ‘그림’으로 생색내는 건 창피하고 불편하거든요. 저보다 훨씬 좋은 일을 하시고, 그림에 대한 더 큰 열정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모든 경험이 저에게 굉장한 활력을 줬어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지만 그로 인한 활동을 하는 것도 정말 좋아요. 때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더 대우받고 싶을 때도 있어요. 연예계 생활을 10년 동안이나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봉사활동을 가면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져요.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탈북 청소년 학교에 강연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척 새로운 환경을 접할 수 있었어요. 경험만큼 가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연예계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그 외의 경험은 많이 부족하잖아요. 세상 구석구석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간다는 자체가 제게는 큰 의미로 다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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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활동도 마음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인가요? 봉사하면서 치유받는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들 하는데, 사실 그건 잠깐이었어요. 요즘은 이 세상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죠.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저는 항상 멀리 떨어져 사는 ‘연예인’일 뿐이었는데, 봉사를 하면서는 그 간격이 좁혀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짧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방송에서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바보’ 이미지가 억울하진 않아요? 전혀요. 그 모습도 진짜 저니까요. 단지 저의 약한 부분이 부각될 때도 있고, 잘하는 부분이 두드러질 때도 있는 거죠. 예능 프로그램은 다른 걸 다 떠나서 재미있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따로 부각될 수 있는 장기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자유로운 영혼
지난해 솔비는 밴드 ‘피터팬 컴플렉스’의 드러머 김경인과 ‘비비스(VIVIS)’를 결성했다. 첫 앨범 「Trace」에는 ‘공상’, ‘진한 사이’, ‘Good-bye’ 등 꽤 실험적인 곡들이 실려 있다. ‘공상’과 마찬가지로 ‘진한 사이’ 역시 음악과 미술을 결합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녀의 작품 중에도 ‘진한 사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이는 김경인이 만든 노래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제는 마이크와 더불어 붓까지 손에 든 그녀가 새삼 달리 보인다.

첫 앨범이 나온 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어요. 활동해보니 어때요? 정말 재미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바쁜 탓에) 긍정적인 면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앞으로 저희가 도전할 수 있는 게 정말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자신감과 에너지도 생기고요. 우선 경인 언니랑 잘 맞아서 정말 좋아요.

‘아트테이너’ 반열에 올랐는데, 이 수식어가 마음에 들어요? 아트테이너, 맞죠(웃음). 사실 가수라면 모두가 다 아트테이너 아닐까요?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연기하는 것도 그 사람의 창작이니까 예술 활동인 거죠. 앞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요. 대신 꾸준하게! 시도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꾸준히 하는 게 좋잖아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 싶은 꿈도 있다고 하던데요? 조금씩 써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뭐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요(웃음). 예전에는 길을 걷기만 해도 새로운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감정적으로 크게 자극받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책을 조금씩 읽어요. 그래야지만 머리를 쓸 수 있거든요.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끌림」을 좋아하고요. 요즘에는 「치유의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책 얘기가 참 오랜만이네요. 예전에는 “너, 요새 뭐 읽었어? 난 이거 읽었는데 좋더라~” 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놀 땐 뭐 하고 놀아요? 집에서 그냥 쉴 때가 많아요. 노는 것도 체력이 받쳐줘야 돼요(웃음). 이제는 계획에 맞게 쉬면서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짐이 있다면, 2016년에는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어요! 나만의 세계 속에서 더 재미있게 뛰어놀 수 있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갖고 싶고요. 남의 눈치 안 보고 사회적인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지 않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리듬대로 삶을 꾸려나갈 거예요.

꿈꾸는 여행지가 있다면? ‘바티칸’이요! 최근에 영화 ‘천사와 악마’와 ‘다빈치 코드’를 보고 바티칸에 푹 빠져버렸어요. 멋있는 동상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요즘 세계의 재래시장을 돌며 화보를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서울 광장시장, 홍콩 몽콕 시장, 파리 베흐네종 시장을 다녀왔죠. 바티칸의 시장에도 가보고 싶어요. 이러다 진짜로 갈지도 몰라요. 나중에 ‘솔비 바티칸 시장 화보’를 보게 되면 ‘결국 진짜 갔네’ 하시겠네요(웃음).

기사출처-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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